뻔한 첫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레트로 열풍이 워낙 대단하잖아요. 1999년을 배경으로 한 첫사랑 영화라고 해서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가볍고 유쾌한 향수 자극 콘텐츠겠거니 했어요. 친구의 짝사랑을 도와주다가 본인도 첫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클리셔였고요.
근데 실제로 보니까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방우리 감독님이 자신의 실제 경험을 녹여서 각본을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가 진짜 진심으로 다가왔어요. 뻔한 전개인데도 불구하고 왜인지 계속 몰입하게 되더라구요.
가장 놀란 건 이 영화가 방우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거예요. 단편 영화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첫 장편치고는 연출력이 정말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푸른 색감의 영상미가 대만 청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감성적이었어요.
비디오테이프라는 아날로그 소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연출이 정말 센스있더라고요. 보라의 집이 비디오 가게라는 설정도 그렇고, 운호가 보라에게 남긴 비디오 메시지를 성인이 된 보라가 보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었어요.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비디오만큼 완벽한 게 있을까 싶었습니다.
김유정이 이 영화를 완성시켰다
김유정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 방우리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김유정 배우를 염두에 뒀다고 할 만큼, 나보라라는 캐릭터와 김유정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어요.
아역 시절부터 로맨스물을 많이 했던 배우라서 그런지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표현하는 게 정말 자연스러웠어요. 친구를 위해 운호를 관찰하다가 점점 그에게 끌리는 모습,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더라고요. 조금 오글거리는 장면도 김유정이 하니까 그냥 귀엽게 느껴지더라구요.
변우석 배우의 풍운호 역도 매력적이었어요. 처음에는 무표정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인데, 점점 보라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설렜어요. 다만 일부 장면에서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김유정의 연기력이 워낙 탄탄해서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잘 잡아줬던 것 같아요.
보라와 연두의 우정이 아름다웠더라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은 보라와 연두의 우정이에요.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가야 하는 연두를 위해, 보라가 짝사랑 상대인 백현진의 정보를 열심히 수집해서 이메일로 보내주는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노윤서 배우가 연기한 연두는 섬세하고 여리지만 따뜻한 캐릭터예요. 보라가 씩씩하고 의리 있는 성격이라면, 연두는 세심하게 보라를 케어해주는 역할이죠. 보라색과 연두색이 보색 관계인 것처럼, 두 친구는 완전히 다르지만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관계더라고요.
특히 후반부에 연두가 진실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의 심경 변화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친구를 위하는 마음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보라의 모습도 그렇고, 두 소녀의 우정이 정말 아름답게 그려졌어요.
1999년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따뜻함
비디오 가게, 삐삐, 이메일, 우편으로 보내는 편지... 1999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활용한 소품들이 정말 효과적이었어요. 지금은 카카오톡 하나면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지만, 그때는 연두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러 PC방에 가야 했잖아요.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설렘을 더 키웠던 것 같아요. 운호가 보라에게 비디오로 메시지를 남기는 장면도 그렇고, 느리지만 진심이 담긴 소통 방식이 요즘 시대와는 다른 감동을 줬어요.
촬영 장소도 대부분 청주 곳곳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99년 당시의 학교와 동네 풍경이 참 아련하게 다가왔어요. 저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 더 몰입이 잘 됐던 것 같기도 해요.
결말이 이렇게 가슴 아플 줄 몰랐더니...
영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결말이었어요. 중반까지는 전형적인 청춘 로맨스의 흐름이었는데, 후반부 반전이 정말 예상 밖이었거든요.
연두가 짝사랑했던 대상이 사실 백현진이 아니라 운호였다는 것, 그리고 성인이 된 보라가 받은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진실까지... 특히 운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방우리 감독은 인터뷰에서 "첫사랑과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는 것보다,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했어요.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죽음과 비슷하다"며 첫사랑의 아련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의 의도대로 청춘과 첫사랑의 아련함은 정말 잘 느껴졌어요. 다만 운호의 죽음이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져서,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해요. 저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지만, 어떤 분들은 "너무 슬프게 만들려고 억지로 죽음을 가져다 붙인 거 아니냐"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효주의 특별출연이 주는 여운
성인이 된 보라 역의 한효주 배우 특별출연도 정말 좋았어요. 김유정에서 한효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 보라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요.
공명, 옹성우 등 다른 성인 배우들의 특별출연도 영화에 깊이를 더해줬고요. 특히 마지막에 보라가 미디어 아트 전시회에서 비디오 속 젊은 운호와 마주하는 장면은... 정말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너무 잘 느껴졌어요.
2022년 넷플릭스 영화 중 유일한 흥행작이 된 이유
20세기 소녀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영화 부문 2위에 올랐고, 세계 5위까지 올라갔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1위를 기록했죠.
2022년 한국 넷플릭스 영화들이 '모럴센스', '야차', '카터', '서울대작전' 등 줄줄이 혹평을 받으며 실패했던 것과 대조적이에요.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섬세한 연출과 진심 어린 스토리로 관객을 사로잡은 게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방우리 감독의 말처럼 "클리셰가 아니라 클래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게 핵심이에요. 뻔한 이야기지만, 그 뻔함 속에 진심과 감성이 담겨 있으니까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거죠.
이런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20세기 소녀는 첫사랑 추억이 있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려요. 특히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10대로 보낸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실 거예요. 비디오테이프, 삐삐, PC방 같은 소품들만 봐도 향수가 밀려올 거예요.
비슷한 감성의 작품을 찾으신다면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너의 이름은' 같은 영화들을 추천드려요. 아련하고 가슴 아픈 첫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20세기 소녀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다만 해피엔딩을 기대하시는 분들께는 조금 아쉬울 수 있어요. 결말이 꽤 슬프거든요. 영화 보고 나서 한동안 먹먹한 마음을 안고 가실 각오를 하셔야 해요. 저는 영화 끝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거든요.
"여러분의 첫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나요? 20세기 소녀를 보고 나니 제 첫사랑도 생각나더라고요. 댓글로 후기 공유해주세요!"
결론적으로 20세기 소녀는 뻔한 설정과 클리셰를 진심과 섬세함으로 극복한, 정말 오랜만에 본 감동적인 청춘 로맨스 영화예요. 김유정의 연기력, 방우리 감독의 섬세한 연출, 그리고 1999년이라는 시대 배경이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작품이에요. 주말에 티슈 준비하시고 꼭 한번 보세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